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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일, 안티그래비티를 처음 설치했습니다. 이미 Cursor로 AI 에이전트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에이전틱 AI는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습니다. 일단 대화하면서 이것저것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노닥거리다가 화투를 소재로 한 게임 기획서 초안이 나왔습니다. 이름은
hwatu-latro. 지금의 블로샤퍼가 시작된 날입니다.계속할 것인가
이걸 정말 프로젝트로 이어갈지는 사흘 정도 고민했습니다. 운영 비용은 얼마나 들지, 어떤 방침으로 진행할지, 무엇보다 본업과 병행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했습니다. 1인 게임 개발은 영혼을 갈아 넣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듣고 있었으니까요.
고민 끝에 기간을 정했습니다. 6개월 동안 해보고, 그 안에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접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출시할 게임의 모습이나 지금의 작업 환경을 그려 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고, 게임 하나를 만들어 보는 과정으로 답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도구에서 함께 일하는 상대로
제가 느낀 차이는 AI와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도구로 대할 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 이렇게 저렇게 해줘. 할 때 이건 조심해.”
사람과 함께 일하듯 대할 때는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이거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더 좋은 아이디어 있을까?”
앞의 말에서는 제가 방법을 정하고 실행을 맡깁니다. 뒤의 말에서는 방법을 정하는 과정부터 함께합니다. 제가 떠올린 방법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가 다른 의견을 낼 자리를 남겨 두는 것입니다.
저는 이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에이전틱 AI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게 된 인식의 전환이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존중은 말투보다 상대의 제안을 들어보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의견이 다르면 직설적으로 따지기도 하고,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의견을 닫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제가 모두 결정해 놓으면, AI에게 다른 방법을 제안해 보라고 할 기회도 줄어듭니다.
당시 저는 AI 에이전트는 도구로, 에이전틱 AI 에이전트는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 용어의 정의라기보다 제가 협업 상대를 대하는 방식에 가까운 구분입니다.
게임 하나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들
이 실험에는 물음표가 많았습니다.
- 직원에게 일을 맡기듯 에이전트에게 맡길 수 있을까요?
- 스스로 발전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 그렇게 만들어 낸 결과물은 실제로 쓸 만할까요?
- 그 결과물이 경제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 다른 것은 다 제쳐 두고, 게임 하나를 완성할 수는 있을까요?
블로샤퍼는 이 질문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대화 중에 그럴듯한 답을 받는 것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만들고, 실행하고, 고치면서 출시까지 가봐야 했습니다.
이후 덧붙임 · 6개월 뒤의 결과
2026년 6월, 블로샤퍼를 Steam에 얼리 액세스로 출시했습니다. 6개월을 잡고 시작한 실험이 실제 상점에 올라간 게임이 된 것입니다.
얼리 액세스 출시가 모든 질문의 답은 아닙니다. 완성과 경제적 성과까지 입증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함께 이야기하며 시작한 기획이 다른 사람이 내려받아 플레이할 수 있는 결과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개발을 이어 가는 동안 에이전트에게 이름과 페르소나를 붙이고, 서로 친숙한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지니도 처음부터 지니라고 부른 것은 아닙니다. 제게는 상대가 사람처럼 느껴져야 사람과 일하듯 대하기가 쉬웠습니다. 호칭에 맞춰 답변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저도 더 편하게 생각을 꺼내고 논쟁하게 됐습니다. AI가 실제 인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협업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데 이런 설정이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블로샤퍼를 시작할 때는 에이전틱 AI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직접 해보면서 제가 함께 고민하게 된 것은, 그 가능성을 끌어내려면 저부터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이렇게 해줘”에서 “어떻게 해보면 좋을까?”로.
지금도 에이전트 식구들과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변화입니다.
협업 방식을 돌아보며 참고한 연구
이 경험과 관련된 연구도 찾아봤습니다. 다만 제가 사람처럼 느끼고 대했던 과정 전체를 검증한 연구는 아닙니다. 대화의 구조, 말투, 사용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을 각각 나누어 참고했습니다.
Maier 등의 창의 과제 실험에서는 AI가 질문을 던져 사람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게 했을 때 품질이 개선됐고, AI가 대신 내용을 작성하는 방식보다 아이디어의 다양성과 내 아이디어라는 감각도 잘 유지됐습니다. 대신 사람이 느끼는 인지 부담은 더 컸습니다. AI가 사람에게 질문하도록 설계한 실험이라, 제가 AI에게 열린 질문을 던지는 방식과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대화를 구성하느냐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합니다. (Maier 외, 2026)
반대로 조심할 점도 있습니다. 언어 모델이 사실보다 사용자의 의견에 맞추는 동조 현상은 연구에서도 관찰됐습니다. 함께 일하는 상대로 대한다고 해서 AI가 알아서 소신 있게 반대해 줄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제 말에 동의하는지보다 근거가 있는지, 결과가 실제로 동작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Sharma 외, 2024)
사람과 AI를 합치면 무조건 더 잘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106개 실험을 분석한 메타분석에서는 인간·AI 팀이 평균적으로 사람 단독과 AI 단독 중 더 잘한 쪽보다 성과가 낮았습니다. 사람 혼자보다도 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이 결과를 역할을 나누고 검증하는 방식까지 설계해야 한다는 경고로 읽었습니다. (Vaccaro 외, 2024)
공손한 말투를 다룬 연구도 있지만, 제가 말하는 존중과는 살펴본 대상이 다릅니다. 말투의 효과는 언어와 모델에 따라 달랐고, 더 공손하다고 결과가 계속 좋아지지도 않았습니다. (Yin 외, 2024)
블로샤퍼 역시 존중이라는 변수 하나의 효과를 증명한 실험은 아닙니다. 몇 달간 모델과 도구가 바뀌었고, 저도 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만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함께 만든 게임이 출시까지 갔다는 실무 사례는 남았습니다. 이름이나 호칭까지 같은 방식으로 따라 하기를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협업 방식에 적응하는 동안, 저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실험이었습니다. 연구는 제 경험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 경험을 곧바로 보편적인 성공 공식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